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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명품의 역사

퍼플스 결혼정보회사 - 전통이 만든 명품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편! 청담동며느리룩


전통이 만든 명품! 청담동며느리룩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편 -






명품 결혼정보회사는 단 몇 년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모여 전통을 이루고 그 전통의 가치가 명품을 만들어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 나는 것입니다.


결혼정보업체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해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난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

오랜 전통의 명품 결혼정보회사 퍼플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담동며느리룩의 대표 브랜드를 소개하고

'명품'으로 거듭난 순간까지 소개해드리는 시간입니다.


하이클래스 문화를 즐기는 청담동며느리를 위해 특별하고 다양한 청담동 문화 소식을 전하는 '퍼플스 청담동 문화'.

럭셔리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출처 -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디올은 여성의류, 남성의류, 백, 구두, 스카프, 주얼리, 사계, 향수 제품 등을 제작·판매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이기에 청담동며느리룩으로 자주 등장하는 브랜드 중 하나이죠.




<출처 - 크리스찬 디올>



▲ 창업자 크리스찬 디올의 가족 사진



창업자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은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정원을 가꾸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귀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또래 남자 아이들과는 달리 정원에서 꽃을 가꾸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섬세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건축과 예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크리스찬 디올은 소규모 아트 갤러리를 열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유명 예술가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31년 전 세계적인 공황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부유했던 집안이 몰락하고 크리스찬 디올의 건강도 나빠지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크리스찬 디올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으며 자신의 재능을 알리기 시작했고 1946년 프랑스에서 가장 큰 직물 회사 사장인 마르셀 부사크(Marcel Boussac)를 만나게 됩니다.


이후 크리스찬 디올의 재능을 알아본 마르셀 부사크의 지원을 받아 크리스찬 디올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하게 됩니다. 

이것이 크리스찬 디올의 첫 시작이며, 현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 크리스찬 디올의 역사 




<출처 - 크리스찬 디올>




◆ 1946 ~ 1947  크리스찬 디올 부티크 오픈 ~ '뉴룩'의 등장



40세가 넘는 다소 늦은 나이에 파리 몽테뉴 거리 30번지에 부티크를 연 크리스찬 디올.

그리고 1947년,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며 자신 있게 의상을 내놓으며 첫 오트 쿠튀르 패션쇼를 엽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군복같이 딱딱한 옷을 입어야 했던 여성들을 겨냥해 풍성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내놓았고 이런 크리스찬 디올의 첫 컬렉션은 '뉴룩(New Look)'이라고 명명되며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출처 - 크리스찬 디올>




◆ 1948 ~ 1957  거대 패션 제국으로 성장


크리스찬 디올의 패션쇼는 원저 공작 부인도 쇼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 입장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매우 인기가 높아졌고 패션쇼를 통해 다양한 스타일을 공개한 크리스찬 디올은 전 세계 17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회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훗날 유행의 시초가 된 오벌라인, 튤립라인, H라인, A라인과 Y라인 등을 발표하기도 했고 립스틱인 루즈 디올(Rouge Dior)을 선보이며 화장품 시장에도 뛰어들기 시작합니다.




<출처 - 크리스찬 디올>




◆ 1957 ~ 19689  크리스찬 디올 사망 ~ LVMH로의 인수합병 


1957년 평소 심장병을 앓고 있던 크리스찬 디올은 52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하게 되고, 당시 크리스찬 디올의 오른팔 역할을 해오던 젊은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 수석 디자이너로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왔으나 당시로써 파격적인 옷을 내놓자 경영진에 의해 해고 당하게 됩니다.


이어 마르크 보앙이 수석 디자이너로 역할을 해오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경영위기를 맞게 되었고, 크리스찬 디올 인수에 많은 그룹이 관심을 보였지만 루이비통 등을 소유하고 있는 LVMH 그룹으로 인수 합병하게 됩니다.




<출처 - 크리스찬 디올>




◆ 1989 ~ 2011  수석 디자이너 영입과 퇴출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는 존 갈리아노, 에디 슬리만, 크리스반 아쉐 등 젊은 디자이너를 영입해 주얼리, 향수 등을 론칭하며 브랜드를 이끌어 왔지만 계약만료 등 다른 이유들로 크리스찬 디올에서 퇴출당하게 됩니다.




<출처 - 크리스찬 디올>




◆ 2011 ~ 현재  라프 시몬스 영입


2011년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는 공석이 되었고 임시로 존 갈리아노가 기용되었지만 혹평을 받아 브랜드를 강력히 이끌어갈 인물로 당시 질 샌더(Jil Sander)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호평을 받고 있던 라프 시몬스(Raf Simons)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게 됩니다.


현재 그는 매 시즌 흥미롭고 성공적인 컬렉션으로 부상시키며 크리스찬 디올 브랜드를 새롭게 변신시키고 있습니다.








| 크리스찬 디올 시그니처 아이템 




<출처 - 크리스찬 디올>




레이디 디올 백(Lady Dior Bag)


사각형의 백에 둥근 손잡이가 달린 레이디 디올 백은 크리스찬 디올의 대표 상품입니다.

1995년, 당시 프랑스 영부인이 칸 영화제에 참석하는 영국의 다이애나 비에게 선물하기 위해 특별 주문을 넣어 만들어진 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이애나 비가 즐겨 들던 레이디 디올 백'으로 유명세를 치렀고 현재까지도 크리스찬 디올을 대표하는 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 크리스찬 디올 광고 캠페인 



<출처 - 크리스찬 디올>




크리스찬 디올은 항상 화제가 되는 컬렉션을 선보였고 여론의 반응을 브랜드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뉴룩'이 호평과 동시에 사치스러운 의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보다 더 많이 끌 수 있었던 이유도 여론의 비판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것을 관심으로 받아들여 화제성을 부각시킨 크리스찬 디올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도 여론의 반응을 적극 반영하여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고객 만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최근 2년 연속 청담동며느리의 선택을 받아 '여성 소비자가 뽑은 프리미엄브랜드대상'에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정재계, 명문가, 전문직 등 엘리트 회원들을 대상으로 맞춤 매칭을 진행하고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회원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청담동며느리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선택해준 청담동며느리에게 감사드리며 오늘 전통이 만든 명품 '크리스찬 디올'편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결혼관 및 이상형, 등급표 등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모든 궁금한 사항은 연락 주시면 1:1 무료 상담을 통해 친절히 상담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상류층 결혼을 선도하는

'퍼플스 청담동'이었습니다!




청담동 명품거리 속 가장 화려한 외관으로 청담동며느리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하우스 오브 디올'!


 ▶'퍼플스 청담동 문화'가 다녀온 방문기 보러가기 







▼ 설문조사 이벤트 ▼



(설문기간 : 2016.07.01 ~ 2016.07.31)



퍼플스는 매달 설문조사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설문조사 참여 후, 퍼플스 홈페이지에 회원정보를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에게는 감사의 의미로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발송해 드리고 있으니

 솔직한 의견 들려주시고 퍼플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타벅스 기프티콘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