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만든 명품


- 루이비통(LOUIS VUITTON) 편 -






명품 결혼정보회사는 단 몇 년 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모여 전통을 이루고 그 전통의 가치가 명품을 만들어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 나는 것입니다. 


결혼정보업체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해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명품 결혼정보업체로 거듭난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

16년 전통의 명품 결혼정보회사 퍼플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명품'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순간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특별하고 다양한 청담동 문화 소식을 전하는 '퍼플스 청담동 문화',


럭셔리 시장 상위 1%를 차지하는 강력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출처 - 루이비통>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가방, 의류, 주얼리, 선글라스 등을 제작 및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로

럭셔리 시장의 상위 1%를 차지하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출처 - 루이비통>



▲ 창업자 루이 비통



창업자인 루이 비통(Louis Vuitton)은 프랑스 동부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워 왔다고 합니다.

루이비통은 14세 때 아버지가 재혼을 한 후, 집을 나와 온갖 일을 하며 파리로 향하게 됩니다.


당시 파리의 귀족 부인들은 여행을 다닐 때 수십 미터 길이의 실크 드레스를 포플러 나무상자에 담아 마차에 싣고 다녔는데, 루이 비통은 그런 여행용 고급 가방을 만들어 보고 싶어, 당시 가장 유명했던 가방 제조 전문가 무슈 마레샬(Monsieur Maréchal)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가방 만들기를 시작한 루이 비통은 섬세한 패킹 기술로 상류층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로 소문나기 시작했으며 외제니 황후(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의 전담 패커로 활동하게 됩니다.


1854년, 재능을 높이 산 외제니 황후의 후원으로 루이 비통의 이름을 건 여행가방 전문매장을 처음 열게 됩니다. 

이것이 루이비통 브랜드의 첫 시작이며, 가방으로 시작해 의류, 액세서리, 선글라스, 시계 등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출시해 오늘날까지 5대에 걸쳐 150여 년간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루이비통의 역사 |




<출처 - 루이비통>




◆ 1854 ~ 1945  창업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행용 트렁크들은 둥근 형태로 여러 개 쌓기 어렵고 무거워 불편함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루이 비통은 어릴 적 배웠던 목공 일과 패커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물건을 적재할 수 있고 가벼운 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하게 됩니다. 편리해진 트렁크는 황후뿐 아니라 윈저공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의 저명한 고객들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트렁크의 성공으로 사업 확장을 하게 되며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곳에 첫 번째 공방인 아니에르를 개점하게 됩니다.

아니에르 공방은 현재까지도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 등 유명 인사의 트렁크와 FIFA 월드컵 트로피 트렁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객의 특별 주문을 받아 상품을 제작하는데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루이비통>




1892년 창업자 루이 비통이 사망하고, 아들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이 경영권을 이어받게 됩니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가 큰 인기로 모조품이 끊이지 않자 모노그램 캔버스를 새로 개발하며 트렁크 외에 핸드백을 만들기 시작했고 다양한 형태의 가방을 선보이며 상품 라인을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합니다.


1936년 조르주 비통이 사망하면서 그의 아들 가스통 루이 비통(Gaston-Louis Vuitton)이 사업을 이어받습니다.




<출처 - 루이비통>




◆ 1945 ~ 1997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마크 제이콥스 합류 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여행의 수단이 기차에서 자동차로 바뀌게 되면서 트렁크보다 작고 실용적인 가방 개발에

주력하기 시작했고 짧은 스트랩 형태의 빠삐용 백과 이삭 결 무늬 위에 다양한 컬러를 도입한 소재 에삐 라인을 선보이며 일본을 시작으로 태국과 대만, 대한민국 등 아시아 시장에 개장하기 시작합니다.


1984년, 가족 경영의 한계에 부딪히게된 루이비통은 샴페인과 코냑제조업체인 모에 헤네시(Moët Hennessy)

합병해 거대 럭셔리 기업인 LVMH 그룹을 설립하게 됩니다.


1990년대에는 남성 비즈니스맨을 타깃으로 한 가방을 신제품으로 론칭하며 베이징에 매장을 열고 중국 시장에 진출합니다.




<출처 - 루이비통>




◆ 1997 ~ 현재  마크 제이콥스 합류 이후


1997년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게 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뉴욕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는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되 젊은 이미지를 가미하여 의류와 신발, 주얼리 컬렉션 등으로 상품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장시켰고 2004년에는 루이비통 창립 1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현재는 창립자의 5대손인 파트릭-루이 비통(Patrick-Louis Vuitton)을 비롯해 모든 비통 가문의 아들들이 트렁크 제조 기술을 연마하며 루이비통의 심장, 아니에르 공방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 루이비통 시그니처 아이템 |


루이비통 상품 라인은 가방, 가죽 소품, 액세서리, 신발, 의류, 시계, 필기구 등 총 9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품은 가방·핸드백으로,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개발을 거쳐 다양한 소재의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출처 - 루이비통>



스피디 백 (Speedy bag)

 

1930년대 둥근 원통형의 여행용 가방이 인기를 끌어 같은 형태의 핸드백으로 제작한 가방이 스피디 백이며, 루이비통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아이콘이자 베스트셀러 가방입니다.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 가장 좋아했던 백으로 유명하며, 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해 '3초 백'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백입니다.




<출처 - 루이비통>



알마 백 (Alma bag)

 

알마 백은 루이비통의 아이콘 백으로,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재탄생되고 있는 백입니다.

1930년대 코코 샤넬(Coco Chanel)의 의뢰로 제작되었던 백으로 유명하며 반달 모양의 심플한 디자인에 넉넉한 수납공간이 있어 실용성을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출처 - 루이비통>



네버풀 백 (Neverfull bag)

 

네버풀 백은 할리우드와 국내의 많은 스타들이 메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스피디 백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백입니다.

'네버풀(Never full)' 이라는 이름처럼 많은 양의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다는 것이 네버풀 백의 특징입니다.






| 루이비통 핵심가치 |


루이비통은 여행, 모험, 눈부신 활약에 대한 동경이라는 테마로 루이비통의 비전과 맥락이 같은 세계 스포츠 대회를 후원해 오고 있고 여행의 주요 이동 수단인 자동차와도 꾸준한 인연을 맺는 등 브랜드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다양하고 확장적인 활동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일괄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출처 - 루이비통>




저희 결혼정보업체 퍼플스도 단순 홍보가 아닌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상류층 이미지를 전하는 동시에 따뜻함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외적 기준과 더불어 마음과 생활이 엘리트적인 사람을 '상류층'이라 여기고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 더불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퍼플스를 이끄는 김현중 대표는 한부모가정지도사 자격증까지 획득해 재혼전문가로 활동하며 재혼 가정을 응원하는 뜻을 담아 '한부모가정 어린이날 축제'를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하여 각종 봉사활동까지 다방면에 걸쳐 활약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도경영' , '준법정신' , '성혼주의', '고객만족'


퍼플스는 대한민국 최고의 정,재계 명문가들의 결혼을 이끌어 가는 결혼정보업체로써 정부 방침에 적극 동참하면서 명품 고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어 최근에는 '2016 한국 최고의 경영자 대상'과 '2016 대한민국 소비자 만족도 1위' 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다양한 경영 활동을 오랜 세월 동안 펼쳐오고 있기에 오늘날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믿어주신 고객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전통이 만든 명품 '루이비통' 편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상류층 결혼을 선도하는

'퍼플스 청담동'이었습니다!





전통이 만든 명품


- 샤넬(CHANEL) 편 -





명품 결혼정보회사는 단 몇 년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모여 전통을 이루고 그 전통의 가치가 명품을 만들어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 나는 것입니다. 


결혼정보업체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해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난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

16년 전통의 명품 결혼정보회사 퍼플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명품'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순간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특별하고 다양한 청담동 문화 소식을 전하는 '퍼플스 청담동',

세계 여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패션 브랜드 '샤넬(CHANEL)'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출처 - CHANEL>




샤넬(CHANEL)은 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선망하는 패션 브랜드로

가방, 의류, 향수, 주얼리, 선글라스, 시계 등을 제작 및 판매하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출처 - CHANEL>


▲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




샤넬의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수녀원에서 머물며 바느질을 배우며 자라왔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봉제회사와 카페에서 가수로 일하며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워왔고, 이후 1910년에 파리의 패션 거리에 샤넬 모드(Chanel Modes)라는 모자 가게를 처음 열었지만 오픈 초기에는 샤넬이 선보인 수수하고 간편한 모자가 상류층 부르주아 여성들에게 외면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유명한 연극배우였던 가브리엘 도르지아(Gabrielle Dorziat)가 자신의 연극에서 샤넬의 모자를 착용하면서부터

샤넬의 모자가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모자 디자이너로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1913년 부티크를 오픈해 1920년대 코르셋(Corset)과 무거운 페티코트(Petticoat, 여성용 속치마)의 굴레에서 벗어난 니트 가디건, 저지 원피스 등의 편안한 스포츠 모드 의류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끈 달린 클러치 백, 주머니 달린 재킷 등 기능성과 심미성을 조화시킨 새로운 형태의 의복을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1982년에 샤넬은 프랑스 최고 훈장을 거머쥔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를 영입했고,

오늘날까지 샤넬을 새롭게 재창조해 오고 있습니다.




I 샤넬의 역사 I




<출처 - CHANEL>




◆ 1913 ~ 1924 창업 및 샤넬 N°5 론칭


부티크 오픈 후, 샤넬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제 1차 세계대전(1914~1919)때부터 입니다. 전쟁 발발과 함께 여성들의 노동력이 요구되어 여성들은 화려한 장식이 어우러진 기존의 의복 스타일보다는 샤넬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샤넬이 남성 속옷에 사용되었던 얇고 가벼운 천을 투피스에 활용해 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극찬을 받았습니다.


대외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샤넬은 1918년, 파리 패션의 중심지 캉봉가 31번지로 진출해 엉덩이 부분 옆 선에 주름을 넣어 만든 샤넬 라인 원피스, 큰 호주머니를 단 재킷 등을 출시하며 1920년 당시 자유로운 복장을 원하던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이후 1921년, 세계 패션계의 역사적인 사업을 시작했고

샤넬의 첫 번째 향수이자 최초의 배합 향수인  'N°5(Number Five)'를 출시해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출처 - CHANEL>




◆ 1924 ~ 1935 코스튬 주얼리 출시 ~ 제2차 세계대전



샤넬이 최초로 코스튬 주얼리(모조 보석, 모조 비즈 등을 소재로 제작한 주얼리)를 출시한 시기입니다.

모조 소재 액세서리에 대한 비난이 있던 때였지만 가브리엘 샤넬은 '보석은 부나 집안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이어야 한다'라며 신념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색색의 보석이나 비잔틴 십자가로 장식한 모조 진주 목걸이 등은 샤넬 장신구의 고전이 되었고, 폭발적인 지지를 얻게 됩니다.


1926년, 여성용 야회복인 '리틀 블랙 드레스' 출시.

당시 상복에만 쓰이던 검은 색상을 처음으로 여성의 일상복에 적용한 것으로, 이후 40% 이상의 샤넬 제품에 검은색과 흰색이 사용하게 됩니다.


1935년 샤넬은 4천 명의 직원을 고용할 만큼 성장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부티크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출처 - CHANEL>




◆ 1936 ~ 1971 제2차 세계대전 이후 ~ 가브리엘 샤넬의 죽음



15년간 파리를 떠났던 샤넬이 71세의 나이로 돌아와 부티크를 다시 열고 제품 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여성들은 전쟁 동안 입었던 실용적인 의상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화려한 의상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1954년 샤넬은 트위드 소재 샤넬 슈트를 출시하게 되었고 계절에 관계없이 여러 해 동안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반응을 얻어 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1957년 샤넬은 미국 댈러스(Dallas)에서 '패션 오스카상(Fashion Oscar)'을 수상하며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인정받지만,

1971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하게 됩니다. 




<출처 - CHANEL>




◆ 1982 ~ 현재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영입



 가브리엘 샤넬의 뒤를 이어 프랑스 최고 훈장을 거머쥔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샤넬에 영입되었고, 기존 샤넬 아이템과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조합시켜 샤넬을 젊고 캐주얼한 브랜드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이후 향수, 시계, 파인 주얼리, 스킨케어 화장품 등을 출시하며 사업 영업을 넓혀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로 성공 했습니다.







I 샤넬 시그니처 아이템 I


샤넬은 크게 의류, 핸드백, 엑세서리가 포함된 '패션', 향수 메이크업이 포함된 '뷰티', 그리고 '시계&파인 주얼리' 등 크게 3가지 상품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샤넬의 대표 상품은 샤넬 N°5 향수와 립스틱, 2.55 핸드백 등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출처 - CHANEL>



샤넬 N°5 (Chanel N°5)


샤넬이 출시한 첫 번째 향수로, 장미 향과 라일락 향 등 단일 향수가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자스민 향기를 기본으로 80여 가지의 성분들을 배합시켜 제조된 향수 입니다.

팝 아티스트로 유명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이 향수를 실크 스크린(Silk Screen)으로 묘사해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출처 - CHANEL>



레드 립스틱 (Red Lipstick)


1924년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개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립스틱으로,

자신의 기호에 맞춘 레드 색상을 발표하고 이를 '샤넬 레드'라고 부르게 됩니다.

지금은 레드 립스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샤넬일 정도로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아이템입니다.




<출처 - CHANEL>



2.55백


1955년 2월에 출시되어서 '2.55백'이라고 명칭한 이 백은 네모난 잠금 장치가 있고,

쇠사슬처럼 꼬아진 금속 숄더 체인을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숄더 체인은 샤넬이 스트랩이 있는 군인 가방에서 착안한 것으로,

클러치 백에 끈을 달아 주어 가방을 착용하고도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이 퀼팅이 적용된 핸드백은 샤넬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I  관대한 패션 트렌드 리더 '샤넬' I


1920년 미국 기성복 산업이 발달하자 활동성이 뛰어난 샤넬의 명품들은 불법 복제품의 타깃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바이어들이 샤넬 제품을 사서 대량으로 제조했는데,

이에 가브리엘 샤넬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옷은 처음부터 매력이 없다'라고 주장하며 한 차례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샤넬의 2.55백과 트위드 재킷은 타 패션 브랜드에서도 흔히 응용하고 있어 일반적인 소재처럼 인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주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관대하게 자리를 지켜온 샤넬이기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처 - CHANEL>



샤넬은 최상류층을 겨냥해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고소득층 고객들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귀족 마케팅을 펼쳐 오고 있다고 합니다.

제품을 구매했을 때 자부심이 생길 만한 가격을 책정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TV나 신문과 같은 대중 매체에는 샤넬의 제품 광고를 싣지 않고 있습니다.

샤넬의 이러한 선택적 마케팅은 샤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자부심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저희 결혼정보회사 퍼플스도 샤넬과 비슷하게 닮아 있는 부분을 찾아보자면 대중적인 고객은 물론, 특히 상류층을 상대로 높은 성혼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버스나 지하철처럼 누구나 볼 수 있는 대중교통에는 퍼플스의 광고를 자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적 마케팅은 퍼플스 고객분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퍼플스 회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상류층을 상대로 광고를 진행하다 보니 대중교통에는 광고를 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부탁드리며, 저희 퍼플스는 '대중'과 '상류층'을 떠나 양가가 만족하는 아름다운 혼사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전통이 만든 명품 '샤넬'편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보라빛 결혼을 선도하는,

'퍼플스 청담동'이었습니다!





전통이 만든 명품


- 에르메스(HERMES) 편 -






 명품 결혼정보회사는 단 몇 년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모여 전통을 이루고 그 전통의 가치가 명품을 만들어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 나는 것입니다. 

결혼정보업체가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해 어느 덧 대한민국 대표,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난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

16년 전통의 명품 결혼정보회사 퍼플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명품'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순간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특별하고 다양한 청담동 문화 소식을 전하는 '퍼플스 청담동',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출처 - Hermès>




에르메스(HERMES)는 1837년 창립해 6대째 내려오는 프랑스의 가족 경영 럭셔리 브랜드로 오늘날까지도 가장 고급스럽고 완성도 높은 명품 브랜드로 손꼽히고 있는 브랜드 입니다.  여성복, 남성복, 가방, 스카프, 신발, 주얼리 등을 제작·판매하는 명품 브랜드 입니다. 




<출처 - Hermès>


▲ 에르메스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




지금은 가방이 대표적인 상품으로 떠오르지만 처음부터 가방이나 의류 상품을 제작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1837년, 에르메스의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가 프랑스 파리에서 안장과 마구용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에르메스가 탄생되었고 주로 승마를 즐기는 왕족, 귀족 사이에서 초기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1900년대 초반부터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인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 Emile Hermès)와 손자인 아돌프 에르메스(Adolph Hermès), 에밀 모리스 에르메스(EmileMaurice Hermès)가 비즈니스에 합류해 여행용 가방, 실크 제품 등을 제품군으로 넓혀 가면서 장인이 만들어 내는 높은 품질의 브랜드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이 주식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에르메스는 현재까지 6대에 걸쳐 가족 기업의 형태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에르메스 만의 특별함과 차별점 입니다.




I 에르메스의 역사 I




<출처 - Hermès>




◆ 1837 ~ 1901 브랜드 설립 및 사업 영역의 확장 시기


품질에 대한 헌신과 청렴함으로 빠른 시간 안에 유명해질 수 있었던 에르메스.

세계 각국의 새로운 공산품을 소개하는 만국박람회에서 에르메스의 마구 제품이 1등상을 수상하며 에르메스 마구의 우수한 품질과 견고함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은 시기입니다. 이를 통해 나폴레옹 3세(Napoleon lll)와 같은 왕족을 에르메스의 고객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에르메스 본사와 플래그십 스토어가 존재하는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에서 전 세계의 왕실, 귀족에게 안장과 마구 용품을 납품하는 동시에 여행용품과 가방과 같은 생활용품도 함께 사업을 창출해 나갔습니다.




<출처 - Hermès>




◆ 1902 ~ 1950 에르메스 형제의 3세대 경영 및 시륜마차 로고 탄생


'에르메스 형제'라는 이름으로 3세대 경영을 이어가는 시기. 이 시기는 고급 마구용품 개발, 다양화하면서 유럽, 북아프리카, 러시아 그리고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상류층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시작한 시기 입니다.  

또한 에르메스의 로고인 사륜 마차 '깔레쉬(Caleche, 마차)'를 상표로 등록했습니다.

당시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뒤끄'라는 고급 마차가 마부 석이 빈 채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에르메스가 고삐를 조정할 고객을 기다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로고라고 합니다.




<출처 - Hermès>




◆ 1951 ~ 1977 로베르 뒤마의 경영 및 지주회사 설립


로고를 적극 사용하며 오렌지 색상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  2차 세계 대전 이후 염료가 부족하던 시기에 오렌지 색이 천연 가죽 색과 흡사했고 당시 가장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렌지 색상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고유의 색이 되었습니다.



◆ 1978 ~ 현재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의 경영  


5세대 경영이 시작된 시기로, 에르메스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실크, 가죽, 기성복 라인 제품을 발전시켰고 스위스 베른(Bern)에 시계부문 자회사인 '라 몽트르 에르메스(La Montre Hermès SA)'를 설립했으며 팔찌, 자기, 크리스탈 등의 제품 라인을 추가하며 에르메스에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I 에르메스 시그니처 아이템 I



에르메스의 제품은 마구용품, 여성복, 남성복, 가방, 신발 등 총 14개의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가방이 대표적이며 가방의 경우 100% 프랑스 장인에 의해 제작되기 때문에

대표 아이템의 경우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보통 1~2년이 지나야 구입이 가능합니다.





<출처 - Hermès>



켈리 백


에르메스 창립 당시 기수들이 사냥 나갈 때 사용하던 '새들 캐리어'라고 불리는 백으로 처음 선보였으며 1956년,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자신이 임신한 것을 가리기 위해 빨간색 악어 가죽으로 만든 에르메스의 쁘띠 삭 오뜨 아 크루아가 유명해 지며 켈리 백이라고 불리게 된 가방입니다. 켈리 백은 에르메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베스트 셀러로서 28cm, 32cm, 35cm 등 다양한 크기로 매 시즌 새로운 버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출처 - Hermès>



버킨 백


켈리 백 만큼이나 잘 알려진 버킨 백은 1970년대 패션 아이콘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백입니다. 1984년 에르메스의 5대 회장 장 루이 뒤마가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제인 버킨이 밀짚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다가 소지품을 쏟는 것을 보고 그녀를 위해 수납이 잘 되는 검정색 가죽 가방을 제작해 주면서 버킨 백이 탄생된 것입니다. 버킨 백 역시 25cm, 30cm 등 다양한 크기로 선보여 지고 있습니다.






I 에르메스 캠페인 I



"에르메스 최초의 고객은 말이다.

말은 광고를 볼 줄도 모르고 세일이나 판촉 행사에 초대 되지도 않는다. 

오직 그들의 몸 위에 얹어진 안장이, 그들을 재촉하는 채찍이,

발에 신겨진 말발굽이 얼마나 편안하고 부드러운지에 따라 더 행복하고 더 잘 달릴 뿐이다"

- 에르메스 전 회장, 장 루이 뒤마 -


마케팅이나 광고 보다는 오로지 품질에 초점을 맞추며 광고비 대신 전시회나 문화 행사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에르메스.


최고의 제품임을 판단하는 것은 화려한 광고가 아닌,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의 몫이라는 철학하에 매출 대비 광고비를 낮추고 전 세계 문화와 예술, 교육 환경을 꾸준하게 지원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출처 - Hermès>


▲ 모바일 상영관 H BOX.


비디오 아티스트들을 선정해 영상물 제작 지원을 해온 에스메스 재단.

영상 상영을 위해 만들어진 멀티 상영관으로 세계 각국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을 상영하는데 쓰여 진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미지와 관련된 어떤 방침은 없다. 우리는 제품에 대한 방침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여타의 명품 브랜드들이 적극적인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럭셔리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 에르메스는 품질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왔습니다.

유행이나 광고에 요동하지 않고 품질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고집해온 에르메스이기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희 결혼정보회사 퍼플스도 '럭셔리', '상류층'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한결같이 신뢰하고 찾아주시는 고객분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감사 인사 드리며

전통이 만든 명품 '에르메스' 편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보라빛 결혼을 선도하는,

'퍼플스 청담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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