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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명품의 역사

청담동며느리룩 브랜드, 전통이 만든 명품 '까르띠에(Cartier)' 편!

전통이 만든 명품! 청담동며느리룩 브랜드

- 까르띠에(Cartier) 편 -





명품 결혼정보회사는 단 몇 년 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모여 전통을 이루고 그 전통의 가치가 명품을 만들어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 나는 것입니다.


결혼정보업체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부터 시작해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명품 결혼정보회사로 거듭난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

오랜 전통의 명품 결혼정보회사 퍼플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담동며느리룩의 대표 브랜드를 소개하고

'명품'으로 거듭난 순간까지 소개해드리는 시간입니다.


하이클래스 문화를 즐기는 청담동며느리를 위해 특별하고 다양한 청담동 문화 소식을 전하는 '퍼플스 청담동 문화'.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까르띠에(Cartier)는 주얼리를 비롯해 향수, 시계, 스카프 등을 제작·판매하는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이기에 청담동며느리룩 브랜드로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 설립자 루이 프랑수와 까르띠에(Louis Francois Cartier)



루이 프랑수와 까르띠에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아

1830년대 중반 보석 세공자 아돌프 피카르의 아틀리에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9살이 되던 1847년에 아돌프 피카르가 죽자,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그의 스승이 운영하던 아틀리에를 인수하고 

자신의 성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이것이 '까르띠에' 브랜드의 첫 시작이며 현재는 전 세계 약 125개국 이상에 진출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지금의 청담동며느리룩을 있게 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Ⅰ 까르띠에의 역사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 1847 ~ 1872  아틀리에 오픈 ~ 알프레도 까르띠에의 경영권 인계



프랑스 귀족들은 1770년대 프랑스 혁명 이래 찾아온 사회적 안정기를 향유하며 

파리 곳곳에서 호화로운 파티와 무도회를 즐겼고 고급 주얼리를 자주 착용함에 따라 메종 까르띠에의 매출이 늘어

 파리 중심지역인 눼브 데 쁘띠샹 5번가로 이전해 개인 주문을 통해 주얼리를 직접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856년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이자 프랑스 사교계의 트렌드세터였던 마틸드 공주의 입소문으로 

프랑스 사교계에서 인기 있는 보석상이 되었고 1850년대 그녀의 지원으로 프랑스 왕실의 공식 주얼리 납품업체가 되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매장은 확장 이전했고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이 보석 세공을 의뢰하게 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루이 프랑수와 까르띠에는 1872년 그의 아들인 알프레드 까르띠에에게 보석 세공을 가르쳤고, 

1874년에 경영권을 물려준 후 은퇴를 했습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 1873 ~ 1947  알프레도 까르띠에의 경영권 인계 이후 ~ 피에르 까르띠에 퇴임



1898년 알프레드 까르띠에는 메종 까르띠에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인 

루이 까르띠에, 피에르 까르띠에, 자끄 까르띠에를 영입했고 세계 시장으로 사업을 넓혀나갔습니다.

1902년 비행사 친구를 위해 '산토스-뒤몽'을 개발했고, 이는 까르띠에가 고안한 최초의 손목시계가 되었습니다.

1911년 이후 손목시계를 발전시켜 시장에 론칭했고, 출시와 함께 좋은 호응을 얻게 됩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1933년 쟌느 투생을 까르띠에의 주얼리 다지인 디렉터로 영입했고

 그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석에 접목해 주얼리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1940대년 루이 까르띠에와 자끄 까르띠에가 세상을 떠나고 피에르 까르띠에가 경영에서 은퇴하면서

 그들의 아들들이 대신해 까르띠에 S.A의 지사를 이어받게 됩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 1947 ~ 현재  피에르 까르띠에 퇴임 이후



1950년대 까르띠에는 고급스러운 품질의 주얼리 제품들로 명성을 이어갔고 

1965년에는 가족 경영 형태로 운영되던 까르띠에 S.A 지사들을 대부분 일반 투자자들의 경영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투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가스라이터 제조업자인 로버트 오끄는 고급 라이터를 만들었고

 발매 후 몇 주만에 파리와 뉴욕 등에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1980년대에는 분할되어 있던 경영권을 하나로 통합 관리하는 까르띠에 몽드의 관리하에 상품 영역을 확장해 나갔고

 레스 머스트 드까르띠에를 산하 브랜드로 합병한 후 최초의 자사 브랜드 향수를 출시하게 됩니다.


 이후 페라리와 계약을 통해 시계, 가죽 제품, 라이터, 만년필 등을 출시하는 브랜드를 론칭했고

1993년에는 까르띠에 몽드의 지분을 소유한 렘브란트 그룹이 피아제와 보메 메르시에와 함께 방돔 럭셔리 그룹을 설립해 

몽블랑, 알프레드 던힐, 끌로에 등의 명품 브랜드들과 방돔 럭셔리 그룹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리치몬드 그룹의 자회사 중 하나인 반클리프&아펠의 CEO였던

 스타니슬라스 드케르시즈가 까르띠에 몽드의 회장 겸 CEO로 취임을 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Ⅰ 까르띠에 시그니처 아이템 



까르띠에는 주얼리부터 시계, 향수, 액세서리 등을 출시하고 있으며

 이 중 대표 상품은 시계와 주얼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탱크(Tank)


탱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시계로, 

출시 초기부터 전 세계의 문화·예술계의 유명인사들이 착용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아이템입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착용했고 

최근에는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 미국 前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등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트리니티 드 까르띠에(Trinity de Cartier)


3개의 고리가 하나로 연결된 형태로 반지, 펜던트, 귀걸이 등이 제작되고 있으며

 까르띠에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의 유명 시인 장 콕토가 항상 착용했던 반지로도 유명하며

 그의 착용으로 파리 상류사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출처 - 까르띠에, 네이버 세계 브랜드 백과>




러브(LOVE)


 주얼리 컬렉션 러브는 팔에 끼운 후, 특수 제작된 스크루 드라이버로 팔찌의 나사를 조여서 착용하는 방식으로 

혼자서는 착용할 수 없어서 결합, 사랑의 맹세, 아름다운 구속을 의미하는 아이템입니다.

 러브 팔찌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색다른 액세서리의 형태로, 특히 커플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까르띠에는 설립 초기에는 주로 왕실과 귀족 등 상류층을 대상으로 주문을 받아 제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고, 제품을 구매한 상류층 사이에서 소문을 통해 고객을 확보해 나갔다고 합니다.


저희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퍼플스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고(대중교통 등)로 방문한 것이 아닌 

상류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통해 방문해 주시기 때문에 고객분들은 더욱 신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광고보다는 품질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고집해온 까르띠에와 같이 퍼플스도 수준 높은 성혼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행복한 가정과 청담동며느리를 탄생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청담동며느리룩 브랜드, 전통이 만든 명품 '까르띠에'편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상류층 결혼을 선도하는

'퍼플스 청담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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